음악 감상/쉼터

[스크랩] 당선작

2월 입주 꼬미 2009. 11. 19. 08:10

2007. 9. 10 01:50 뉴스/속보
하미경 씨 창조문학신문 신인문학상에 당선!


운정 김이철 님의 사진작품 '부게인빌레아' 4

 

 "시답지 않기 때문에 시가 되는 아이러니"

 

  <서울=창조문학신문사>창조문학신문사(대표 박인과)에서는 신인문학상에 하미경 씨의 시 낙엽 외 2편을 선정하여 발표했다.


  그녀의 시와 심사평은 다음과 같다.


  

 

낙엽 / 하미경(31세, 안양 거주, 영어 강사)


내 자신이 낙엽 같다.


오그라들대로 오그라들어

작은 바람에도 툭 떨어져 버리는

생명을 잃은 낙엽…


나도 푸르고 싱싱했을 때가 있었던가

그것은 이미 과거이고

지금은 난 말라버린 낙엽이다.


내 자신이 초라하고 비참한건 둘째치고

혹여 누구 발에 밟혀 짓이겨지지 않을까

두렵다...


난 아무 힘도 없고

살아갈 기력도 없다.

난 밟혀 치워질 때를 기다리는

쓸모 없는 낙엽이다.



즐거움 / 하미경


길을 걸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간다.

난 그들을 외면하고 그들도 날 모른다.


이런 외로움에 익숙했을 때

어느날 그대는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아! 나도 그래도 맹색이 이름 있는 사람이구나.

나도 불릴 만큼 존재 가치가 있긴 한가.


그대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대는 나를 바라보았고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다른 사람을 보면 괜히 웃음이 난다.

그 사람에게 당신을 자랑하고 싶다.

내 입술에서 노래가 떠나질 않고

내 귀에 아직도 그대 목소리 들린다.

내 인생의 티끌 만큼의 가치를 알게 해준

그대에게 왠지 고맙다…

그대에게 많은 것을 줄 순 없지만

난 그저 그대 곁에 머문다.



고요 / 하미경


새벽의 공기는 고요하다.


새들의 지저귐도 없고

시끄러운 경적 소리도 없다.


난 새벽에 또 다른 시작을 꿈꾼다.


조심스럽게 정성을 다해서…

하루를 살고자 한다.


내가 마음을 열고 세상을 볼 때

소망하는 바를 이룰 수 있으리라.


나의 한계를 짓지 말고

세상에 한걸음 나아가야 한다.


타인을 미워하지 말자.

용서하고 이해하자.

그럴때 나도 평화로울 수 있다.


peace~



심사평 : 문학평론가 박인과


  요즘은 생활시가 유행인 시대다. 그런데 그 생활시가 시다워야 시인 것인데, 그렇지 않은 작품들이 꽤 많은 현실이 아프다. 그러나 하미경의 시는 그렇지 않다.


  하미경의 시는 자신의 아픔을 아픔 그대로 간직한다. 아픔을 극복하려고 하지 않고 오직 그 아픔을 그대로 끌어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극복이다. 아무도 모르는 자신만의 포용이다. 큰 바위가 진흙탕으로 굴러가며 자신은 힘이 세다고 한다. 진흙은 아플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진흙탕의 진흙들은 자신들을 짓누르는 엄청난 바위의 무게를 그대로 끌어안는다. 그러면서 바위 전체를 진흙으로 덮어버리는 것이다. 바위가 진흙을 눌러버린 것이지만 또한 진흙은 바위를 감싸안은 것이라서 바위는 진흙 안에 존재하고 바위의 색깔은 없어져 버리고 만다.


  놀라울 정도로 하미경의 시는 그런 것이다. 포기가 포용을 낳는 것이다. 진정한 승리는 강제가 아닌 포용인 것이다. 혹 누가 하미경의 시를 두고 지극히 시답지 않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면 지극히 시다운 것이 무언가. 하미경은 지극히 시답지 않다는 언어들을 끌어안는다. 시어같지 않은 언어들로 시의 둥지를 만든다. 하미경의 시는 그래서 지극히 시답지 않기 때문에 시가 되는 아이러니의 팻말을 그의 넘치는 입심으로 꽝꽝 박고 있다. 대단한 것이다. 그리고 대단한 배짱이다. 기성 문단에 이 시를 밀었으면 당장 나가 떨어져 버리는 낙엽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시가 낙엽이다.


  요즘은 너무나 시다운 것들이 시를 죽인다. 너무 빛난 시들이 시의 색깔을 혼란스럽게 한다. 유치환의 깃발은 많이 시답지 않았다. 그래서 시가 되었다.


  그녀가 낳는 시의 이미지 센서는 ‘그대’라는 시어에 있다. 이 그대는 일상적이고 이상적인 ‘그대’에서 더 나아가 신적인 ‘그대’로 쓸쓸함과 희망으로 채색되는 창조의 레이어로 떠오른다. 그래서 낙엽처럼 헛된 일상사를 채득한 인간의 체념의 시간대에서 하나님을 지칭하는 ‘그대’라는 신적 언어로 희망의 창을 열고자 한다. 그래서 그녀가 여는 창문은 항상 새벽의 문이다. 이것은 구원이다. 인간이 낙엽으로서 체념되어질 때 비로소 열리는 문이다. 그녀의 시 ‘즐거움’은 그녀만의 신앙고백이다. “당신을 자랑하고 싶다. / 내 입술에서 노래가 떠나질 않고 / 내 귀에 아직도 그대 목소리 들린다. / 내 인생의 티끌 만큼의 가치를 알게 해준 / 그대에게 왠지 고맙다…”


  그래서 그녀의 시는 하강과 상승의 곡선을 타며 한계를 짓지 않은 우주, 그 ‘평화’라는 우주의 바이오리듬을 캡처하고 있다. 그녀의 시는 순금의 맥으로 튼튼하다.

출처 : 주님과 시의 품안에서 휴식을...
글쓴이 : 해바라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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